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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후덴만구

일본 12,000곳의 덴진 신사 중 최초로 지어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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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을 통해 신사를 자세히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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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개요

일본 12,000곳의 덴진 신사 중 최초로 지어진 곳

호후 덴만구는 귀족 학자이자 시인, 행정가였으며 901년에 교토의 궁정에서 규슈로 유배당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천신으로 숭배하기 위해 904년에 설립된 곳입니다. 미치자네는 유배를 떠나던 길에 자신이 덮어쓴 죄목이 거짓으로 밝혀지길 바라며 호후에 머물렀습니다. 결국 903년에 규슈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미치자네가 세상을 떠나던 날, 빛 기둥이 바다 위로 내리쬐고 현재 신사가 자리한 언덕 뒤로 기이한 구름이 나타나는 등 기적적인 일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고 합니다.이런 기적적인 사건은 미치자네의 영혼이 혼슈의 마지막 정착지로 돌아간 것으로 해석되어 미치자네가 사망한 지 1년이 지난 904년, 호후에 이 신사가 지어졌습니다.

호후에서 목격된 기적들은 놀라운 일은 아니었고, 교토에서 훨씬 더 놀라운 사건들이 벌어졌습니다.황궁에 번개가 내리치는 바람에 미치자네의 몰락을 도왔던 귀족들이 죽었던 것입니다. 미치자네는 마음을 위로받고자 했던 강력한 신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신이 된 미치자네는 덴만-다이지자이-덴진, 줄여서 덴진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번개를 조종하는 능력을 지닌 '자유롭게 날씨를 조종할 수 있는 하늘의 신'을 뜻합니다.909년, 미치자네의 숙적인 후지와라노 도키하라가 사망하고 930년에는 다이고 천황이 세상을 떠나면서 덴진을 위로하는 일이 전국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오늘날 일본에는 12,000곳의 덴진 신사, 즉 덴만구가 존재합니다. 호후 덴만구는 일본에서 최초로 설립되었으며 교토의 기타노 덴만구와 규슈의 다자이후 덴만구와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호후 덴만구는 여러 방면에서 독특함을 자랑합니다. 이곳에서는 한 명이 아닌 네 명의 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다른 세 명은 미치자네의 상상 속 조상입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신사에는 중심 성소(혼덴), 제물을 바치는 당(헤이덴), 예배당(하이덴)이 각각의 건물에 자리하지만, 이곳에서는 모두 한곳에 자리합니다.

호후 덴만구는 1952년에 소실되어 옛 문서에 기록된 디자인에 따라 10년 동안 재건되었습니다.시간이 지나면서 덴진은 시인 겸 학자로 성공한 미치자네의 업적에 따라 배움의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그런 이유로 여전히 많은 사람이 학업에서의 성공을 바라며 덴진 신사를 찾고 있습니다.

호후 덴만구에 관한 몇 가지 사실

  • 904년에 건축된 호후 덴만구는 일본에 있는 12,000곳의 덴진 신사 중 가장 오래된 곳입니다.
  • 신사로 향하는 57개의 계단은 미치자네가 규슈로 유배 가던 길에 호후에 들렀던 당시의 나이인 57세를 뜻합니다.
  • 신사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800년 된 녹나무입니다.
  • 신사의 고진-고사이 축제에 사용되는 이동식 신사와 수레는 그 무게가 총 1.5톤이나 되는데, 이는 코뿔소 한 마리의 무게와 비슷합니다.
  • 신사로 향하는 입구인 도리이는 야마구치현에 있는 가장 오래된 석조 도리이입니다.

Photo:Honden사진 : 혼덴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전기

살아서는 관료로, 죽어서는 신으로

스기와라노 미치자네(845-903)는 903년에 사망한 이후, 덴진 신으로 신격화된 헤이안 시대(794-1185)의 역사적인 인물이었습니다.중산층의 학구적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세의 덕을 보기보다는 순전히 지력과 우다 천황의 총애로 우다이진으로 임명되었습니다.미치자네의 성공은 더 높은 가문 출신 라이벌들을 분노하게 했습니다.결국 우다 천황가 퇴위하고 다이고 천황가 즉위하자 사다이진이었던 후지와라노 도키하라는 미치자네에게 거짓 죄를 씌웠고, 미치자네는 교토의 궁에서 추방되었습니다.미치자네는 규슈의 정부를 관장하며 중국과 한국의 특사가 찾아오는 다자이후로 보내졌습니다.

미치자네는 교토를 떠나기 전에 퇴위한 우다 천황에게 자신의 오명을 벗겨달라고 간청했습니다.미치자네가 혼슈에서 마지막으로 머무른 곳은 호후였는데, 이곳은 당시 이곳 지방 정부의 행정을 돌보는 곳이었습니다.미치자네는 현지에 있는 하지 가문과의 혈연 덕분에 환대받았습니다.그는 자신이 받은 죄목이 거짓으로 밝혀지기를 바라며 호후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바다를 건너 규슈에 가는 것을 꺼렸습니다.

미치자네는 901년에 다자이후에 도착했지만 2년 후인 903년에 사망했고, 전설에 따르면 크게 상심했다고 합니다.사람들은 바다 위로 빛줄기가 내리쬐고 인근 언덕 봉우리를 덮는 신비로운 구름이 나타나는 등 미치자네가 사망한 날에 호후에서 벌어진 기적을 보고 처음부터 호후와 혼슈를 떠나지 않으려고 했던 그의 영혼이 돌아왔다고 믿었고, 영혼이 지낼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런 이유로 미치자네가 사망한 지 1년 후인 904년에 호후 덴만구가 지어졌습니다

photo:Sugawara no Michizane

사진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호후 덴만구 역사관

호후 덴만구 역사관은 신사에 봉헌된 600여 점의 공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주요 내용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Photo:The Museum사진 : 역사관

신사의 기원에 관해 그린 족자

길이 75m인 삽화 전기

역사관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품인 그림 족자로, 마쓰자키 덴진의 기원에 관하여 6개의 족자에 그려 상자안에 보관되었습니다.

삽화가 실린 족자 여섯 개로 총 길이가 75m에 달합니다.족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마쿠라 시대(1185-1333)가 끝나기 직전에 만들어진 1331년 판이며, 하나는 무로마치 시대(1336-1573)인 1504년에서 1520년 사이에 만들어진 무로마치 사본입니다.

처음 다섯 개의 족자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845-903)가 유배 가는 길에 자신의 교토 정원에서 매화나무에 작별을 고하는 생전의 모습과 복수심에 불타 적에게 번개를 던지는 덴진 신이 된 모습 등 대표적인 전설을 담고 있습니다.하지만 여섯 번째 족자는 호후 덴만구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두었습니다.(마쓰자키는 호후 덴만구가 원래 마쓰자키 신사로 불린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원본 가마쿠라 판은 호후 덴만구 이외에서 전시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결과적으로 펼쳐 놓거나 빛에 노출된 일이 드물어서 700년이나 된 작품임에도 색감이 매우 선명하며 종이에 주름도 거의 없습니다.아이러니하게도 가마쿠라 판은 금지령 덕분에 200년 후에 만들어진 무로마치 판보다 상태가 더 좋습니다.

족자의 삽화는 예술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1952년 신사가 소실되어 재건할 당시에 기존의 도면대로 재건하는 데 실용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Photo:Matsuzaki Tenjin Engi Emaki

사진 : 마쓰자키 덴진 족자 Photo:Matsuzaki Tenjin Engi Emaki사진 : 마쓰자키 덴진 족자

금동보탑

평화 기원 탑

1172년에 신사에 바쳐진 40cm 높이의 금동보탑입니다.부처의 실제 유물을 떠올리는 초록 유리구슬을 안치하고 있습니다.신사에 탑을 바친 12세기 후반, 황궁이 쇼군들에게 힘을 잃자 일본은 격변의 시기를 맞았습니다.탑에 적힌 글귀와 같이 후지와라노 수에수쿠라는 한 지방의 관료가 퇴위한 고시라카와 천황의 장수와 수오 지방(현재의 야마구치현)의 풍년 그리고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작은 탑을 사원에 바쳤습니다. 이 금동보탑은 일본의 덴진 신사 12,000곳을 통틀어 그 시기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유물이기 때문에 특히 더욱 귀중합니다.

Photo:Kondo-hoto사진 : 금동보탑

본쇼

전쟁 전리품

다른 전시품 중에는 시간을 알리던 본쇼, 즉 불교 범종이 있습니다.가마쿠라 시대(1185-1333)에 만들어져 다이묘인 오우치 요시타카(1507-1551)가 후쿠오카 덴후쿠지에서 약탈한 뒤 신사에 바친 것입니다.

Photo:Bonsho사진 : 본쇼

호쇼안 : 녹차 밭에서 마시는 녹차

호쇼안('향기 나는 소나무 암자') 티하우스는 1991년에 시작되었으며, 수도승의 숙소가 있던 터에 지어졌습니다. 9세기 당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845-903)는 황궁에서 차를 마시던 관습(당시에는 오늘날 차와는 달리 약재의 기능이 컸다)을 다시 시작했고, 이 티하우스는 그 유산을 기리고 있습니다.호쇼안은 정원 동쪽 끝에 있는 전통적인 작은 티하우스이지만, 그 앞에는 훨씬 더 규모가 큰 2층 건물이 있습니다.두 건물 모두 잉어로 가득한 개울이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입장료에는 말차 한 잔과 일본 다과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제대로 된 예절에 따라 차를 마시고 싶다면, 오른손으로 잔을 들고 왼쪽 손바닥을 펼쳐 그 위에 올린 후, 오른쪽으로 두 번 돌려 마십니다. 이렇게 하면 잔의 앞으로 마시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Photo: Fall garden사진 : 가을의 정원

효천루 : 혁명가들의 비밀회의 장소

호쇼안에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효천루라고 하는 오래된 목재 건물이 있습니다.한때 이 지역 여관 소유의 별채로서 장아찌를 담그던 곳이었습니다.2층으로 올라가는 기존의 계단은 접을 수 있어 이상적인 비밀회의 장소로 활용되었습니다.메이지유신에서 막부 체재를 타도하고 황권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 사무라이들이 효천루에서 모임을 가지곤 했습니다.

'이곳에서 회의를 가졌던 '대의를 품은 남자'라는 뜻의 시시 중에는 일본의 초기 헌법 원고를 작성했으며 1885년에 일본의 첫 국무총리가 된 이토 히로부미(1841-1909), 군대에서 사무라이가 아닌 방식을 처음으로 제안한 다카스기 신사쿠(1839-1867) 등이 있습니다.이들 모두 생전에는 정부 관료였고 사후에는 신이 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845-903)를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Photo:Gyotenro사진 : 효천루

매화와 황소 : 전설의 상징들

매화와 황소는 사후에 호후 덴만구의 신 덴진이 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845-903)와 연관된 두 가지 상징물입니다.헤이안 시대(794-1185)의 예술 애호가였던 귀족 미치자네는 꽃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중 매화를 가장 좋아했다고 합니다.전설에 따르면 그는 규슈로 유배당하게 되자 가장 먼저 교토 저택에 들러 자신의 정원에 있는 매화나무에 작별을 고했다고 합니다.미치자네가 규슈에 도착했을 때, 그가 가장 아꼈던 나무들인 벚나무, 매화나무 그리고 소나무가 그의 뒤를 쫓아 날아가려 했다고 전해집니다.벚나무는 외로움에 시들어 갔고, 소나무는 그의 뒤를 쫓아가려 했으나 힘이 다 빠져버렸다고 합니다. 오직 벚나무만이 끝까지 그의 뒤를 쫓아가 유배당한 미치자네의 곁에서 번창하며 그를 위로해 줬다고 합니다.이렇게 벚꽃은 덴진의 상징이 되어 일본의 여러 덴만구 문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호후 덴만구 부지에 1,100그루의 벚나무가 있는 것 역시 이 때문입니다.

신도에서는 모든 신에게 정해진 동물 시종 또는 사자가 있다고 믿습니다.미치자네의 경우에는 그 동물이 황소이며, 한 설화에 그 계기가 담겨 있습니다.미치자네는 903년에 유배지인 규슈의 다자이후에서 사망했습니다.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상에 맞게 황소가 끄는 수레에 시신을 싣고 성대한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장지로 향하던 도중에 수레를 끌던 황소가 자리에 앉더니 움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이는 미치자네가 바로 그 자리에 묻히고 싶어 했다는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그 이후, 앉은 황소는 신이 된 미치자네, 즉 덴진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고 앉은 황소의 상 속에 신이 자리했다고 믿고 있습니다.호후 덴만구에는 황소 상이 세 개 있습니다.

Photo:Plum사진 : 매화

Photo:Ox사진 : 황소

고진-코사이 : 사면을 기념하는 축제

일본의 신사에는 각각의 축제가 있는데, 호후 덴만구에도 축제가 있습니다.고진-코사이는 호후 덴만구에서 유래합니다.이곳에서 모시는 신인 덴진은 9세기 말의 귀족 행정가였지만 규슈로 유배돼 용서받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세상을 떠나 신이 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845-903)를 말합니다.

고진-코사이는 미치자네가 사망한 지 101년이 지나 이치조 천황이 사면을 명한 해인 1004년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그 문서를 운반하는 황실의 사자가 지금은 토지를 개간하여 내륙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이 지역의 항구였던 가쓰마노 우라에 도착했습니다.(미치자네가 901년 호후에 도착했던 바로 그 항구였습니다.)매년 11월 넷째 주 토요일이 되면 활기 넘치는 수천 명의 인파가 덴진을 모신 바퀴 달린 이동식 신사를 끌고 2.5km 떨어진 옛 항구로 향합니다.행사가 끝나면 신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이 축제는 하다카보 마쓰리, 즉 나체의 수도승 축제라고도 하는데, 다수의 참가자가 흰색 천으로 국부만을 가린 채 참석하기 때문입니다. 나체는 순수하고 자연적인 상태로 신을 모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신사 축제를 벌이는 또 다른 이유는 매일 사람들의 청을 들으며 지친 신을 신자들이 신사 구역에서 모시고 나와 흔들어 준 뒤에 신이 다시 활기를 얻어 한 해 더 기도와 간청을 올리는 인간들의 말을 들어 줄 힘이 생기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Photo:Gojin-kosai Festival

사진 : 고진-코사이 축제

この翻訳について

このサイトの解説文は観光庁の地域観光資源の多言語解説整備事業で作成し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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